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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주연입니다(요3:22-26)

by Vision posted Jan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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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본문에서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주연이고 자신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기뻐하는 자로 지냈습니다. 

1. 하나님 안에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압니다(27).  정결의식의 변론을 마친 요한의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세례를 받으러 가는 것을 보고 시기하며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갔다라고고 말을 합니다. 그 보고를 한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은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을 향하고 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을 향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묘사하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예수님께 가는 사람들을 신부로 묘사를 합니다(29). 당시에,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부가 될 사람들이 신랑이신 예수님께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신랑의 친구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나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입니까? 

3.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를 중심으로 이루어 집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신랑에게 데리고 갈 때가 제일 기쁜 것입니다(29). 요한은 분명한 기쁨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기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으로 기뻐하는 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기쁨의 기준이 분명하게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나의 신랑되신 예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있기에 오늘의 삶이 있음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됩니다. 

4. 요한은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고백합니다(30).  요한은 예수님은 점점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점점 놓아져서 하나님의 영광 받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but) 나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낮아져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는 지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의 낮아지는 모습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모습을 닮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요한의 낮아짐은 결국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며, 그리스도를 높이는 모습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습니까?  

5.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만물 위에 계신 분으로 설명합니다(31). 하늘로 부터 오시는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십니다. 그렇기에 친히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32). 예수님이 하늘로 부터 오셨기에 요한은 확실하다고 말합니다(3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요1:14).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참 되심을 우리는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가 되시는 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성령과 만물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게 하시고, 만물을 주셔서 그에게 오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셨습니다(36).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순종하는 것입니다(36). 예수님을 믿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고, 예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세상은 그의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참되신 분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만물이 예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사실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축복입니다. 

7.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는 의지가 들어가있는 것입니다. 이 의지에는 자신의 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가득한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임합니다(36). “자신의 의”로 살아가려는 이들 위에 진노가 머뭅니다. 나에게는 나의 의가 얼마나 있습니까? 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십자가 위에서 죽여져야 예수님께 순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8. 믿음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믿음은 순종하는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반대로 불순종은 믿음 없음을 드러냅니다. 내 믿음이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내어드립니다. 
 
 하나님, 내 삶의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 인도되는 사람들을 보고 을 기뻐했던 요한과 같은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