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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삶(요6:1-15)

by Vision posted Jan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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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실 때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1.’그 후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이나 된 환자를 고쳐준 사건 이후를 말합니다. 이 사람은 죄가 병의 원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깨닫게 해주십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환자를 고쳤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까지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죄에 대해서 잘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죄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에서 나은 환자에게 죄를 더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을 기준하여 보면 모든 사람은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로 오신 분입니다. 죄에 대해 무지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길과 진리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우선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읽어가야 한다는 요한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2.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1-2).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을 해도 길과 진리이신 예수님의 뒤에는 많은 사람이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표적이 나타났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믿음(4:48)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삶을 원하셨습니다(4:49). 

3.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기 보다 표적을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들을 먹이시려고 하셨습니다. 몇번이나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표적만 보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성도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먹이시려고 빌립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5-6). 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먹여주십니다. 사랑의 분이십니다. 교회에 처음 오시는 분은 처음부터 말씀을 들으려고 오시는 분들은 없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배고픔을 위해, 어떤 분들은 생활고를 해결하고 위해, 어떤 분들은 병문제를 위해 찾아오십니다. 주님을 찾아온 그 동기가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먹여살려 주시는 분입니다. 

4.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람들을 먹일 계획을 가지시고 계셨지만 제자인 빌립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랬더니 빌립은 이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1데나리온은 하루종일 일하면 받을 수 있는 급료를 말합니다. 빌립은 200일, 즉 사람이 6개월 이상을 일해야지 벌 수 있는 금액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빌립은 한 눈에 보고도 얼마가 필요한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의 계산은 매우 빠르고 합리적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답변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믿는 믿음, 믿음을 가지면 표적을 보여주시는 믿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그의 제자, 빌립에게서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자신의 판단과 계산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5.안드레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턱도 없이 모지라는 숫자에 불구하다고 말씀을 드립니다(9). 안드레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양식은 이렇게 많이 모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레가 그 아이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 간 것은 예수님께서는 자신과는 다른 분으로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작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리고 축사하신 후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고 물고기는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부른 후에 보니 열 두 바구니가 남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6.아이가 내어놓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많은 사람의 배를 채웠습니다. 아이 자신이 먹을 식사거리를 예수님께 내어 놓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위해 내어드리는 작은 희생은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님을 위해 내어 드릴 때에 우리 삶에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5천명을 먹여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반면, 나에게 5천명이 먹을 수 있는 빵과 물고기가 넘게 있더라도 주님께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내 삶 속에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 드리는 삶이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요합니다. 

7.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기적과 표적을 실제로 체험을 하면서 제자들은 굉장히 무안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눈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생각을 뛰어 넘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삶은 계산이 안됩니다. 복음 전도자의 삶은 계산이 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채우시는 분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이 세상의 공급자이시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에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얼굴을 찡그리지 말고 채워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얼굴을 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8.사람들은 이 놀라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자신들에게 경제적인 필요는 분명히 채워주실 분이라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당시 자신들을 통치하던 헤롯 왕보다 놀라운 왕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잡아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15).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16). 만약 이 때에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셨다면 역사의 한 임금으로 기록이 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억지로 하는 사람들의 뜻에 의해 계속 놀림감이 되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군중에 의한 예수님이 아니셨습니다. 사람의 도구로 사용되는 그러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사람입니다.  

9.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 혼자 가셨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떠나 혼자 가셨습니다. 혼자 기도하러 산으로 다시 가셨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기를 좇아 다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을 인기를 좇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0.기도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다시 혼자 산으로 향하셨습니다(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합니다. 기도 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다시’라는 말은 한 번만 가신 것이 아니라 몇 번이나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계속 반복되어야 하고, 체질화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일 지라도 기도를 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안하더라도 내 기도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11.산을 오르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리고 체력이 소모가 됩니다. 1분을 기도하기 위해 산을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올라가는 동안 힘이 든 만큼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산 위로 올라가게 되면 내가 이제까지 산 밑에서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 속에서 지낼 때에는 나 중심으로 생활을 하기에 다른 사람이나 지역은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 올라가면 보이는 것이 하늘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마나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나를 위한 기도보다 내 눈 앞에 펼쳐진 도시와 마을이 눈에 들어오고 이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나 중심의 기도에서 주님 중심의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내 중심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눈으로 이 땅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주신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