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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은혜로 만드신 예수님(요9:1-12)

by Vision posted Feb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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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제자들은 호기심으로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그 사람이 관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유대 문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재난과 고통은 죄의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모든 질병을 죄와 연관을 짓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욥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질병이 반드시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욥기 2:1-10).

2.현대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장애인을 바라볼 때에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애를 입은 사람이 이러한 시선을 받으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죄로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어떤 호기심으로 바라 보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가진 장애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셨습니다(3). 여기에는 엄연한 시각의 차이가 보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사람이 시작장애인이 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십니다. 문제를 가진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더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들을 바라볼 때,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은 사람들의 과거에 있습니까. 미래에 있습니까. 

3.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의 고통을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픔이라는 고통을 통해 동일한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실 수 있도록 하시며, 때로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시며,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로 나아가게 하시며, 고통을 견뎌가는 모습을 통해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4.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낮 동안에는 예수님은 빛이셨습니다(5). 빛이 세상에 있었기에 낮이었습니다(4-5).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낮에는 빛이 함께 하시는 시간입니다. 낮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며 밤은 활동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합니다. 밤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는 기간입니다(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셔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우리가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4).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 제자들을 함께 하는 동역자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활동할 수 있는 낮 시간에 제자들을 예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5). 하나님께서 주신 이 낮에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를 소원합니다.    

5.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시각 장애자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7).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신 것은 안식일에 일한 것이었습니다(14절참조). 예수님이 이 사건을 통해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6.예수님께서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을 고치기 위해서 굳이 이 방법을 사용하신 것은 그의 순종을 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날 때부터 시각이 보이지 않았던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가서 썻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눈이 되어 왔습니다(7).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전에는 그냥 시각이 안보이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가 눈이 안보였을때에도 예수님은 옆에 계셨지만, 맹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로암 못으로 눈을 씻으니 밝은 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결단은 순종을 낳고, 순종은 예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7.실로암은 히스기야 왕 때에 기혼 샘으로부터 물을 취하기 위해서 수로를 건설했고, 그 물이 티로폰계곡 남쪽 끝이 위치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려내려와 고이는 곳이 바로 실로암 못이었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다’라는 뜻이 있는 ‘쉴로하’에서 유래된 지명 이름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실로움의 연못을 예수님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하여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가장 낮은 곳인 실로암으로 가야지만 치유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나아갔을 때에 시각 장애인은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8.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내 자신을 내려놓고 낮아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기고 결단하고 순종해 보아야 비로서 믿음의 눈이 뜨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보이지 못하는 세계가 열립니다. 

9.사람들은 긴가 민가 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보이기 시작한 시각장애인은 “내가 그라”고 주저하지 않고 분명하게 대답을 합니다. 자신이 그 옛날 구걸하고 있었던 부끄러운 과거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실을 그대로 알립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고통을 당한 자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미래적인 시각입니다. 
 
10.사람들은 어떻게 눈이 뜨여졌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고백은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은 당시에 모든 유대인 앞에서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그대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하셨고, 내가 어떻게 순종하였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사실 그대로 증거합니다. 

하나님, 제자들은 장애의 원인을 죄의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의 사람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목적을 보셨습니다. 고난을 고난으로만 생각할 때는 답변이 없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목적을 생각하면 고난이 복음으로 바뀌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삶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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