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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로 한 가족이 되길 원하십니다(요10:11-21)

by Vision posted Feb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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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1.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십니다(11,15,17,18).  주님께서는 목숨을 얻기 위해 버리셨습니다(17).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어 주심으로, 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살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목숨을 버리셔서 영원한 생명의 목숨을 얻게 하셨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버려지는 곳에 영원한 생명이 채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여러 아픔들을 감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10절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2.예수님께서 계신 때부터 지금 이 시대에 까지도 삯군은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이용하여, 그 사람이 목숨이 잃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인 양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지만,  그들은 양들을 돌보지도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삯군이라고 말하십니다(12-13). 사람을 믿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3.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의 목숨을 버리는 예수님의 삶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17).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 이유는 분명한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주저없이 버리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적인 모습을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오늘 내가 희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4.생명을 위해 생명을 버릴 때에 주님은 그를 존귀하게 보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사람이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에 하나님은 채워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여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때에 하나님은 번제를 대신할 숫양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창22:13-14).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부터 부르시는 이’로 믿었기에 이에 순종했습니다(롬 4:17). 아브라함이  믿은 믿음 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을 죽으시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허락하시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영원함은 자기를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 의해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5.예수님은 양을 알고 양도 예수님을 압니다(15).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매일 매일 살펴서 양을 알아가고 양은 매일 매일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우리는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15). 

6.예수님이 목자로 계시는 우리에 들지 아니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16). 16절 본문에 나오는 다른 양은 직접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말하고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다 포함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욕하고, 거부하고,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런 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들까지도 예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참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7.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16).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과 하나가 되지는 못하지만,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교회를 거부하는 자라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면 예수님은 우리로 한 가족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버리셨습니다. 

8.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려 미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의견에 반대의견을 내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귀신 들린 자라면 어떻게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자가 눈을 뜰 수가 있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눈이 뜨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이 보이지 않는 자의 육체적인 눈 뿐만 아니라 믿음의 눈도 뜨게 해주셨습니다. 내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나 뿐만 아니라 내 자녀, 내 가족, 내 친지, 내 이웃이 영적인 눈이 뜰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에 힘입어 기도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내 자녀, 내 가족, 내 이웃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선한 목자가 되셔서 나를 사랑하셨듯이 나도 이웃을 위해 살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한 우리의 한 가족이 되게 하소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눈뜨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 모든 자에게 널리 나타나게 하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profile
    박경아 2017.02.10 15:53

    오늘도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profile
    SEONGHOYOON 2017.02.10 17:37
    독사를 독사라 부르면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속에는 물론 만나고 싶은 그리운 사람보다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이라 하셨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신 모습이고, 이 양들은 영혼을 가진 양들이라 영혼을 지닌 채 서로 부대끼면서 삽니다. 그런 중에서 때로 목자의 인도하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양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양을 길 잃은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양이 길을 잃는 것은 양의 잘못입니까 목자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모두의 잘못입니까? 양이 잘못을 느낍니까?

    삯을 받고 일하는 목자는 항상 받은 삯보다 적게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양들을 일정한 곳에서 일정한 곳으로 이동 시키는 것을 자신의 일로 최선의 자신의 일로 압니다. 그러나 삯을 주는 주인은 바람이 많습니다. 양이 이리에게 상하는 것도 방지해 주고, 병든 양도 없어야 하며 물론 길 잃어 없어진 양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삯군의 목숨까지 바친 헌신적인 목자역할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삯군 목자는 귀찮은 일이 있으면 방치합니다. 쉽게 포기합니다. 자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요10:11-21)에서 선한 목자는 길 잃은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목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양들을 끌고 가는 길에는 길 잃은 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호시탐탐 양을 노리는 이리가 있고, 길가에는 양의 발목을 노리는 독사도 있을 것 입니다. 그런 양을 구하기 위해 이리와 독사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람이 선한 목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리와 독사는 양들의 목숨 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의 목숨마저도 앗아 갑니다.

    하와를 유혹한 사탄은 뱀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물론 지금의 뱀의 모습이 아니었겠지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땅을 기어다니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독을 가진 뱀을 독사라고 합니다. 독사는 이미 독을 가져 버린 동물입니다. 독은 치명적이고 목숨을 앗아 갑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극한의 모습일 것입니다. 길 잃은 양은 자신의 목숨만을 잃지만, 독사와 이리는 양들의 생명까지 앗아 갑니다. 사람이 독사가 되면 영적 독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다 지니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큰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너희가 참으로 작은 믿음만 가져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 예수님 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저희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모든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최종 선택은 이리와 독사를 막대기나 돌로 쳐죽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이리와 독사가 아닌 저희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의 죄는 그렇게 큽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리와 독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같이 하십니다. 우리가 독사 밭으로 들어 갔을 때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를 구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내가 양인지 독사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 입에서 독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주받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스스로가 독사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혐오하는 자는 독사가 되어 갑니다. 그리고 주변을 질시하고 혐오하며 이웃을 영적으로 오염시킵니다. 이미 길 잃은 양이 아닙니다. 우리를 양에 비유하는 것은 목자이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지, 우리가 아무런 욕망의 의식도 없는 양이라는 표현이 아닙니다. 인간인 우리는 양이기 보다는 끊임없이 의문과 욕망을 가진 뱀입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고 독을 품게 됩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독사들이 있습니다. 독사가 된 인간들의 진짜 독사와 다른 점은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을 전염시켜 독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 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독을 품어 선한 인간들을 다시 독사로 만듭니다. 삯군들은 그들에 의해 독사가 되고 독사가 된 삯군들은 독사들을 양산하는 독사목자가 됩니다. 저희들은 독사를 피해 가야 합니다. 영적 독을 품은 독사들은 막대기로 죽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는 것은 사탄이며 귀신들입니다. 독사들은 때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의 다리를 물어 독을 옮깁니다.

    그들에게 나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큰 소리로 외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욕을 한 것으로 꾸며 나쁜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에게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독사는 무섭습니다.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불렀던 예수님은 그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들은 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큰 소리로 외칠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 놓을 각오를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참으십시오. 그들이 선한 양으로 돌아 오기까지 이웃사랑으로 참으십시오. 독사가 선한 양이 됩니까? 예수님도 포기하신 그들입니다.

    성경에는 이리와 독사가 가끔 언급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런 이리와 독사를 만나면 어떻게 하라는 명확한 말씀이 없습니다. 선한 목자는 막대기와 돌로 그들을 쫓을겁니다. 삯군 목자는 양들을 버리고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여 도망갑니다. 양들은 그저 피해 다닙니다. 아니 명확한 말씀이 있습니다. 목자의 인도하는 길로만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가 인도한 보금자리인 우리 속에 독사와 이리가 들끓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삯군 목자가 인도하는 좁은문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이리와 독사가 들끓습니다. 목자는 때로는 삯군이상으로 그 상황에 무관심합니다. 아니 오히려 독사를 만들고 스스로 독사가 되어 그들을 보호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죽을지언정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마디쯤 욕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왜 선한 사람에게 좁은길의 길목에 그런 이리와 독사를 배치해 놓으셨는지 하나님께 한마디쯤 원망해 보면 안될까요? 그런 원망 한마디를 하면 정작 독사들보다 나쁜 사람이 되어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 할까요? 아마 그럴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리와 독사는 포기하셨으므로, 우리는 목숨을 잃을지언정 독사라고 크게 왜치는 (욕하는) 것은 나쁘다 하십니다. 선하게 목숨을 잃어라고 하실겁니다.

    독사를 독사라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선한 이웃입니다. 상대를 독사로 생각하기 전에 내가 독사가 아닌지 반성해야 됩니다. 물론 그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살아 갑시다. 그러나 왜 이리 사지에 힘이 빠질까요. 말씀대로 사는 것은 때론 참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