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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큰 은혜(요10:22-30)

by Vision posted Feb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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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1.수전절은 주전 164년에 유다 마카비우스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더러워진 성전을 수리하고 깨끗하게 하여 주님 앞에 새롭게 봉헌한 것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수전절을 축하하기 이해서 유대인들로 예루살렘 성전은 붐비고 있었고, 이 때는 추운 겨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솔로몬 행각에서 이 추운 겨울날 걷고 있었습니다. 행각은 일반적인 교습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홀로 성전에서 걷고 계신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셨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영적인 암흑기라 불리운 이 시대에도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셨습니다. 

2.예수님께서 성전을 수리하고 새롭게 봉헌을 한 수전절에 성전으로 오신 이유는 유대인들을 수리하고 고치시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에워싸고 ‘당신이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느냐’그리고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 즉 정치적인 해방자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분 자신을 메시야라고 선언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고소하거나, 신성모독행위로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마음은 분명 수리되고 고쳐져야만 했습니다. 

3.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직접적으로는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아버지와 함께 일하신다고 말씀을 하셨고(요 5:17-18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님의 행하신 일로 분명히 메시야되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모든 행위도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4.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을 향햐여 말씀을 하셨으나(25) 분명한 것은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26). 당시에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고 했었던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행적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신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그 입에서는 비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비판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5.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은 지식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은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6.유대인들이 믿지 아나하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 양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26). 이 말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말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보여지는 세상에는 강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이 세상에서 육체적인 삶으로 끝이 나는 정말 불쌍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눈물의 기도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7.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매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자이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알고, 우리는 예수님을 따릅니다(27).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주님 말씀을 따라삽니다(28).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에 그 은혜를 알기에, 그 은혜를 크게 입고 있기에, 그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자에게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8.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죽음도 빼앗을 수 없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모시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어린 양입니다(29).

9.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신 분이십니다(29). 만유보다 크신 분이 예수님께 주셨기에 이 양들은 그 어떠한 모든 외부 세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능력으로 양 때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29). 이 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28절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빼앗을 수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훨씬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보호하실 때에 하나님을 당할 대적은 없습니다. 만유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인생의 인도자로 모시면 그 분이 영원토록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9.예수님이 누구입니까? 도대체 누구시기에 이런 엄청난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 여기서 ‘하나’로 번역된 ‘헨’은 중성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은 구별이 동일한 본질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삼위 중에 두 인격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이시기에,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처럼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이니라’도 현재시제로 ‘지금’도 하니이시며, 계속해서 ‘하나’이시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나’이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10.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고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이후에 그들도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삽니다(행전 3:11-12절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전5:12절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삽니다.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자녀들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 가에 따라 나를 아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서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따라가는 삶이 내 자녀를 변화시키고, 내 이웃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으로 오늘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만유보다 크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로 믿는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의 큰 선물을 주시고 믿음의 큰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음성 듣고 살도록 하소서. 오늘도 나를 새롭게 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profile
    SEONGHOYOON 2017.02.10 05:47
    오늘의 말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 시절 이스라엘의 학교제도는 모르지만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며 자신이 목수였음을 보면 제대로 된 정식교육은 받지 않은 사람 즉 인자였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사회의 제도적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인간적인 지혜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인자가 하는 말씀을 듣고 참으로 놀라고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25년 전쯤인지 "십자가의 도"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의 믿음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아무런 제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저자가 적은 십자가의 의미를 읽고 제 신앙심이 제대로 정리되는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이해하려고 하였다만 제도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즉 인자가 하신 말씀을 듣고 아 이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구나 라고 감동을 받아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가진 자에 대한 열망을 하면서도 가진 자를 오히려 역차별하는 참으로 비그리스도적 사회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진 자의 부류에는 재산 뿐 아니라 학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학식에 대한 열망과 성공을 바라면서도 그런 사람을 보면 질시의 눈이 되어 교만하다는 등 잘못된 인간의 인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그런 모습을 늘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가진 자로서 지혜로우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는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의 가진 자로서의 교만이 대립적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교육효과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진 자가 나쁜 것이 아니고 가진 자이면서 나쁜 사람이 나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진 자들은 오히려 현명하여 말씀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교육은 지혜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를 보다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지혜는 아무런 제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인자의 말씀을 바로 듣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입관 없이 받아들이는 방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리새인들은 제대로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예수님의 양입니다. 양으로서는 최대한 가진 자입니다. 가진 자를 스스로의 모순과 잘못된 교만으로 비난하지 말고, 가진 자로서의 책무를 다 하도록 노력합시다.
  • profile
    박경아 2017.02.10 16:05
    믿음의 은혜를 선물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세상이 알 수 없는가슴 밑바닥으로 부터의 기쁨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