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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요11:17~27)

by Vision posted Feb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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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 예수님께서 마침내 오셨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무덤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시니’의 원문은 별견하였다. 알게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것은 어떤 사람들이 보아도 이미 완전히 죽음은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의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기에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2.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에서 나사로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들도 모여들었습니다(19). 베다니가 예루살렘에서 약3킬로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였고 사람들도 많이 모였기에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예수님에게는 괘 위험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3.예수님께서 도착하신 것을 보자 마르나는 예수님께서 계셨다면 나사로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 확신을 했습니다(21). 동생 마리아도 동일하게 생각을 했었습니다(32). 이들은 나사로를 잃은 슬픔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4.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셨기에 죽기 전에 오셨다면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해야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어떤 일을 이루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르다가 한 말 가운데 그녀가 ’이제라도’라도 말한 것은 그녀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상실감과 슬픔 가운데 마르다는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때에라도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은 언제나 충분히 있습니다. 

5.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25).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믿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죽었지만 살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인 죽음을 막아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육체적인 죽음을 막지 않으셨지만, 나사로에게는 영원한 영생이 보장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시며,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부활과 생명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6.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영생과 믿음에 대해 말씀하신 이후에 마르다에게 이 사실을 네가 믿느냐고 질문을 하십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믿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깊은 믿음에 대해 물으신 것입니다. 마르다가 원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은 자기 중심적인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입니다. 

7.마르다는 믿음으로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믿었습니다(27).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확신을 하였습니다. 그 분을 메시야로 인정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로 받아들이는 가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예수님이 믿음의 대상이 되기로 하고, 믿음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으로도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존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누릴 하나님의 약속에 함께 참여한 자들입니다. 내 인생의 현재, 누구입니까? 나의 주는 누구입니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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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NGHOYOON 2017.02.18 01:59
    오늘의 말씀은 두 종류 인간의 극명히 다른 점을 나타내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참소하려는 유대인과 마르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해 완전히 이 세상에서 주검이 된 나사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마르다는 그 오라비의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인정하고 마지막 날 부활에 대한 믿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관념화된 언약을 다시 수정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과 주님과 같이 하면 영원히 죽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라비가 죽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녀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자신의 믿음의 모습을 수정해 갑니다. 그렇습니다. 오래 하나님을 믿어 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 속에는 굳은 관념 즉 율법적인 믿음이 강해져 갑니다. 마르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물이 흐르듯 그 믿음이 새로와집니다. 그런 모습을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그리고 저희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죽은 나사로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관념이 굳어진 유대인에게는 웃을 말씀이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저희들의 잘못된 믿음을 극한의 표적으로 수정해 주시고자 하는 주님의 의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저희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나사로나 마르다와 같이 사랑받기 위해 주님과 같이 합니다.
    흐르는 물과 같이 순종합시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도 같이 하게 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