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요11:28~37)

by Vision posted Feb 16,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MG_0482.jpg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1.사람들이 몰려들어 개인적인 만나는 것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생각하여 따로 불러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28). 예수님이 마리아를 보내라고 마르다에게 지시한 내용은 본문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주님이 부르신다고 하여 마리아가 주님과 만나도록 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 소식과 자신에게 전한 가르침은 마리아에게도 기쁜 소식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마리아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세심하게 배려를 해서 따로 불러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합니다. 마르다가 전한 예수님의 소식은 깊은 슬품에 잠긴 마리아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은혜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동생 마리아도 동일한 은혜를 받는 길로 인도를 했습니다. 주님께 먼저 은혜를 받은 자가 이웃에게 대하는 모습이 이러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오늘 내가 마르다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2.예수님은 슬픔 가운데 처한 사람들에게 자신에게로 먼저 오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28). 예수님은 마리아도 예수님을 만나러 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 사모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시고자 부르십니다. 예수님께 나가면 모든 문제들의 답을 얻습니다. 마리아처럼 슬픔을 떨쳐버리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갈 때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3.예수님께서는 마르다가 있던 곳에서 마리아를 기다리셨습니다(30). 예수님은 상가를 방문하지 않고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조문객으로서의 예의를 무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애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4.마리아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오자 마자 그 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32). 그녀는 진실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주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나갈 때에 우리 주님은 위로해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5.예수님께서는 마리아과 조문객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으로 아파하셨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다로 여긴 말은 격렬하게 불쾌하게 느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죄로 말미암아 생긴 죽음의 사건을 보고 마리아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이며,  또한 유대인들의 믿음 없는 태도를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오신 메시야이십니다(요 10:25-26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6.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우셨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믿는 동정심도 없는 법관과 같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가지신 인간이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함께 우리를 동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슬퍼하셨고, 인간을 잘 이해하셨습니다.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처럼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자의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7.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37).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께서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유대인들의 주장은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더라도 나사로는 죽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면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나사로가 죽은 것으로 보아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것도 의심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은 어떻해서든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 사건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한계에 대해서 혹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믿음으로 하나님을 한정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봅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나가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의심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여지게 하셔서 참 생명과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 교만과 편견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 은혜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Articles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