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QT

나를 받으옵소서(요12:1~11)

by Vision posted Feb 16,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IMG_0491.jpg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리 마을에 마지막으로 방문하셨습니다(1).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지 몇 주가 지난 시점입니다.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기적은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했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불안해하며 예수님을 살해하기로 모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며 그 지역을 떠나셨다가, 다시 한번 사랑하는 친구들과 재회하신 것입니다. 

2.예수님이 방문하시자, 마르다는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일을 보고 부활을 경험한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 중에 있었습니다.(공관복음과 관련해서 보면 이 잔치가 베풀어진 장소는 시몬의 집이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마26:6~7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마리아라고 표기하지 않고 한 여자로 표기한 것은 공간복음서가 쓰여진 시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공관복음 서가 쓰여질 때는 종교지도자들이 나사로를 죽이려고 했으며, 마리아를 적대시하였기에 실명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1세기 후반 경에 기록했고 모든 사람들이 죽은 이후였기에 안심하고 실명을 기록했다고 봅니다.) 공관복음과 비교해서 볼 때에 마르다가는 일을 했다는 것은 마리아가 봉사를 했다는 것을 요한은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봉사는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나오는 섬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3.식사를 마쳤을 때에 마리아는 순전하고 값비싼 향유를 가져다고 예수님의 발에 발랐으며 향유의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습니다(3). 나드는 왕에게 기름부을 때에 사용되는 것이었기에 마리아는 그의 왕 메시야이신 예수님께 기름을 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예수님의 발에 쏟아부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릴 때에(그것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 혹은 직장에서, 혹은 혼자 있을 때에, 또한 주님께 드리는 것이 자신이 가진 것 예를 들어, 예물, 봉사, 시간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충성되게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것은 하나님께 예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십니다. 헌금도 최선의 것을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기도를 하며 주님께 드리는 이 시간도 절대 아까운 시간이 아니며, 기뻐받으시는 귀한 향기로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4.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붇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가장 반발한 사람은 가롯 유다였습니다(4). 요한은 특히 가롯 유다가 누가인지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그가 제자 중 하나였으며 에수를 잡아 줄 자로 기록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있던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1세기 후반에 교회 내의 생겨난 이단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자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가 일어났다는 것은 이런 일이 언제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나중에 예수님을 배반하여 예수님을 팔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으면서도 구주예수님과 함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배반하는 죄를 범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 외에는 없습니다. 

5.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행위에 대해서 가룻 유다는 옳지 못하다고 따집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린 향유는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단시에 한 데나리온은 품꾼의 하루 품삮이었기에 300데나리온은 거의 일년 동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수입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돈으로 바꾸면 가낭한 사람들을 많이 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5). 다른 제자들도 그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여전히 오늘 이 시대에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며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에 대해서 먼저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께 헌신도 하지 않는 자의 선행은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구제와 착한 선행은 하나님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실을 아는 데에서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담대히 드릴 수 있었던 그 헌신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과 동일하게 생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깨달은 자가 진실되게 소외된 이웃을 향해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6.겉으로 드러난 말과는 다르게 가룻유다는 이중적 마음을 가진 위선자였습니다. 가룻유다는 가난 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도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돈 주머니를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가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은 것은 그 일에 재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가룻유다는 그 향유가 얼마정도 되는 가치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룻유다는 종종 개인의 용도를 위해서 제자들의 돈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습니다. 유다는 마리아가 자신의 최선으로 예수님께 드린 향유보다 그 향유가 가진 실제적인 가치인 300데나리온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는 감추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선을 배푸는 사람처럼 말을 했습니다. 계산에 뛰어난 가롯유다의 장점이 갑자기 탐욕으로 변하는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다가 돈 계산에 대해서 뛰어난 장점과 함께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아셨고 결국 가룻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많은 장점을 가졌던 유다의 삶은 결국 거짓의 삶이 되었으며, 거짓은 사단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는 길을 내어주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달란트도 거짓을 위해서 사용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말과 행동은 일치해야합니다. 

7.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자신에게 부은 향유가 허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7). 분명하게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가난한 자들은 돌아볼 기회가 항상 있지만, 예수님과는 항상 함께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앞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기회가 많이 있지만 메시야로 온 자신을 사랑하고 경의를 표할 시간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8.마리아의 행위는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예건한 것이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 자신의 믿음을 향유를 드리는 일을 통해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다에게도 돈의 가치에 대해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귀중한 예물을 드린 마리아와 대조적으로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팝니다(마 26:14-16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리아가 드린 예물은 다른 사람에게부터는 비난을 받았지만, 주님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최선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예물을 인정하십니다. 다른 어떤 사람의 오해나 비판을 받았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선한 행동도 때로는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향유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왕으로서 메시야로서 생각했고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 사랑을 예수님께 보여드린 것입니다. 

9.유월절 의식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착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사로가 부활한 기적과 같은 사실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그 베다니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그 두 사람을 보기 위해 왔습니다(9).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부활한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를 했습니다(10). 왜냐하면 나사로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11).예수님을 죽이기 원하는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어떤 저항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유대종교지도자들에서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소문으로 들은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세상으로 확산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확산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리아는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이 참으로 귀합니다. 주님을 향한 그 선한 행동이 비록 세상 사람의 비난과 오해를 가져 왔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최선의 사랑을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이 참으로 귀합니다. 나 또한 내가 가진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참 사랑을 주님께 드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사랑합니다. 주님.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을 드립니다. 아멘.    


  • profile
    SEONGHOYOON 2017.02.18 02:58
    오늘의 말씀의 핵심은,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님과 나사로마저 죽이려고 음모하는 제사장과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모습, 즉 현재의 우리의 죄성과, 믿음의 과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마르다와 핵심적인 모습을 보이는 마리아의 모습을 대립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미 욕망을 위해 자신들의 행동을 정해 꺼리낌없이 움직이는 제사장들의 모습, 그리고 믿음의 확신으로 1년치의 임금의 향유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머리를 빗기는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죄성에 빠진 우리는 죄성을 정당화 하기 위해 제사장들이나 유다처럼 자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때로 그들의 변명은 너무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저희들은 인간이 가진 논리의 허약성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논리는 이런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한 논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이 욕망을 바탕으로 한 지식의 허약함이며 허무함입니다.
    믿음은 단순합니다. 그런 우리의 욕망의 죄성을 사하기 위해 자신의 유일한 자식을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저희들에 대한 큰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킨 아버지의 사랑을 믿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