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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요(12:12~19)

by Vision posted Mar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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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1.베다니에서 잔치가 있던 그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이 사실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유월절이 가까이 왔기에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2.예수님이 오시는 소식을 듣고 큰 무리가 예수님을 맞으로 나와 호산나라고 외치며 큰 소리로 찬송을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믿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실 때에는 예수님을 목박으라고 외치는 자로 변했다. 내가 지금 주를 찬양하고 있어도 예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없다면 나 역시도 예수님을 배신하는 무리가 될 수가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3.구약 선지자인 스가랴의 예언(스가랴 9:1-8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이 실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화려함 외침 속에서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는 모습이 왕의 모습과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다. 왕이라 부르는 외침에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다. 부끄러울 듯하지만 굳이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고 오셨다. 왕으로 오셨지만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셨다는 것을 재발견한다. “주님, 사람들 앞에서 보기에는 부끄러울 지라도 순종하기 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택하겠습니다.” 

4.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예수님)을 가리켜 보이시며 하나님께서는 ”두려워말라”고 하신다(15). 인용하셨던 스가랴 본문(스가랴 9:9)을 보면 “크게 기뻐할지어다”로 표현이 되어 있지만 굳이 “두려워말라”로 바꾸어서 요한은 기록하였다. 왜 굳이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을까? 요한복음의 문맥을 따르면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긴박했던 상황들을 엿볼 수 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적대시 하던 예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위험한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당연히 기뻐해야할 일이지만 예수를 죽이는 무리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당연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반기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려고 하는 사탄의 무리가 당연히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두려워말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기쁨인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따르는 수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을 하신다! 두려워말라! 

5.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제자들을 깨닫지 못했다(16).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여러 기적들을 눈으로 보고 직접 확인을 했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그들은 잘 알지 못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본다고 할지라도 성령님이 없이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이들은 비로서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낮아지신 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분을 회복하셨을 때에 그들은 이해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제자들은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우리의 믿음 생활도 하루 아침에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알 수가 없다. 오늘 하루도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에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성령님 나를 인도하소서!

6.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살아온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니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진리 가운데 인도하신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잠시 멈추어 오늘의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돌아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뒤를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주님이 하셨습니다!”이다. 내 삶을 간섭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7.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서로  이 일을 증언이 되고자 했다(17). 주님의 능력을 체험한 자들은 예수님을 알리고 증거하였다. 놀라운 비밀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진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신 분이며 부활의 주님이시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놀라운 비밀을 함께 나누어야되지 않겠는가?

8.예수님을 맞이한 유대인들은 그가 죽은지 4일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렸다는 사실을 들었다(18). 요한은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나사로를 살렸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직접 들은 적도 없고, 다른 이적에 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다. 표적을 추구하는 믿음 생활이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구할 것은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일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린도전서 1:22-24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9.많은 유대인들이 예수에게로 관심이 몰리자 바라새인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탄식이 나왔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따르는도다(19)” 절망감이 섞여 있는 말이며, 열등감에 사로 잡힌 말이다. 자신들에게 몰려와야할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니 이런 탄식이 나오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이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 뿐인데 그들은 지금 ’온 세상’으로 과장된 표현 속에 절망과 열등감이 내포되어 있다. 나에게 와야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로 몰리게 될 때에 그들은 자절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중심은 철저한 자기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내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10.”온 세상이 예수를 따르는도다(19)”라고 내뱉은 그 말은 실제가 되었다. 1세기 후반에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지역을 넘어서,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세계를 넘어서 이집트와 유프라테스강 건너의 에레사라는 지역까지 전파가 되었고 지금은 전세계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넘치고 있다. 요한은 예수님을 적대시 하는 자들의 말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질 일을 보여준다. 오늘 날 온 세상이 예수를 따르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복음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에 죽고 복음에 살아야 한다. 복음에 내 자아가 죽어야 하고 복음에 의해 내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 생명이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깨닫게 하소서.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에서 오늘도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는 자가 아닌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복음의 능력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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