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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퀴리오스)는 나인가? 그리스도인가?(눅 20:41~21:4)

by Vision posted Sep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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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무지보다 더 나쁜 것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아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 뿐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내 주(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표현한다(시 110:1).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 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시고 신성을 가지신 분이다. 두 가지 지식을 동시에 고려할 때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 수가 있다. 내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적 지식이 전부가 아니다.
 
2.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육신을 가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를 말씀으로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5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피곤하실 때에는 주무셨다. 배가 고프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채찍을 맞고 피 흘리시며 고통 당하셨다. 십자가에서는 목말라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여섯 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가지셨다.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계셨다. 

3.신성과 인성을 가지시고 이 땅의 중보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다가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34

4.그리스도는 주(퀴리오스)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통틀어 친히 이 세상의 모든 자의 주가 되시는 분이심을 알기 원하신다. 우리 인생의 주님은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내 인생의 주는 절대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나의 주님이 되신다. 

5.옛날 결투에서 승리한 사람은 승리의 상징으로 땅에 엎드려 있는 패자를 발로 밟았다. 다른 나라에 정복당한 왕은 정복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시편 110:1의 말씀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스도의 원수인 마귀가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될 것을 예언한 내용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발로 짓밟아 멸망시키신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님이 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편 110:1

6.예수님이 내 삶의 주가 되셔야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모든 사람들의 주가 되시지만, 예수님 자신께서 섬김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분은 섬기셨다. 나는 섬기는 자인가? 군림하는 자인가? 섬김은 예수님이 내 삶의 주가 되실 때에 내 삶 가운데 비로서 드러난다. 

7.예수님의 섬김을 알지 못하는 서기관들은 자신의 불완전한 지식을 전부인양 자랑했다. 사람들에게는 대접받기를 즐겼다. 서기관들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다니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항상 윗자리인 상석을 차지했다. 가난한 과부들을 돕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재산을 챙겼다. 기도할 때는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아 다른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내 삶의 주(퀴리오스)가 되면 내가 주인으로 살게 되고, 결국, 모든 죄를 용납하고 만다. 외식하는 자는 내가 주로 사는 자이다. 그러나 섬기는 자는 그리스도가 주이다. 나의 주는 과연 나인가? 그리스도인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8

8.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고 생각했던 서기관들이 받을 심판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크고 엄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산다고 하는 자일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많이 아는 자가 더 많이 책망을 받는다. 섬김의 종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9.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 입구에 비치된 헌금함에 헌금을 넣었다. 부자들은 돈을 넣는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일부러 동전으로 바꾸어 넣기도 했다. 돈 소리가 짤랑거려야 많은 돈을 바친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금도 외식으로 보여지는 헌금생활을 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치가 더 크고 중요했다. 나는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사는가? 사람인가? 아니면 나인가? 정말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있는가? 

10.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한 헌금보다 진심으로 드리는 과부의 작은 헌금을 칭찬하셨다. 사람은 외모와 드러나는 행위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부자는 풍족한 재산 가운데 일부를 드렸지만,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최대가 아닌 최선이다. 나는 최선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기도: 외식적인 모습(겉모습)을 책망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하셔서 섬기는 마음으로 신실하게 살게 하소서. 죄는 아무리 작아도 결코 용납하거나 타협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내가 주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가 되도록 나의 삶을 도우소서. 최대가 아닌 최선을 드리는 주님께 드리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매일을 예수님과 함께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