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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 2:19~3:6)

by Vision posted Sep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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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 2:19~3:6)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질문하기: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말씀에 비추어볼 때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묵상하기:
1)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시다(10). 구원의 창시자라 함은 구원이 필요로 하게 된 그 때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범죄한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담의 불순종을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다. 예수님은 아담과 여자의 불순종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주시고, 그 때부터 사람을 어떻게 구원시킬지에 대해 준비하셨다. 먹으면 죽는다고 했기에 예수님은 이 아담을 죽음에서 살리기 위해 이들을 대신해서 죽어야 할 가축을 찾으셔야 하셨다. 그리고, 그 가축을 희생시키시고 그들을 위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4). 그리고 이들을 통해 태어날 많은 아들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셨다. 예수님 자신께서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서 다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을 창시하셨다. 이 은혜를 입은 자로서 나는 오늘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또한 내가 구원으로 인도해야 할 이는 누구인가?

2)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기에,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형제라고 불러주셨다(11).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형제라고 자매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죄투성이인 나를 형제라고 불러주셨다. 

3)예수님은 주의 이름을 형제된 자들에게 선포하고, 교회(예수님을 믿는 무리)안에서 주를 찬송하며, 주님은 의지할 분이시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셨다(12).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을 때에 우리는 이들이 우리의 형제됨을 알리고, 찬송하며, 주님 밖에 의지할 분이 없다는 이 고백을 우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살루와 버선딸이 교회의 가족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이들이 주께 돌아왔을 때에 이들도 주의 형제됨을 알리고, 함께 찬송하며, 주님을 향하여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4)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해있다.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해있기에 영적으로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믿음이 약해서 그 부모가 믿음으로 이끌어줄 수 밖에 없다. 

5)혈과 육에 속한 모양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시고 사셨다. 혈과 육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로마서 6:23에도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하시듯이, 죄가 들어왔기에 이 땅에 죽음이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 없이 혈과 육으로 살면 죽음에 이루 수 밖에 없다. 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마귀이다. 그러나 이 마귀를 벌하실 분이 계시다. 이 마귀를 멸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밖에는 없다. 

6)죄의 결과는 사망이다(롬 6:23). 사망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을 사탄이 가지고 돈다. 죽음의 두려움을 가지고, 사람을 협박하고, 강도질을 한다. 범죄하는 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15). 

7)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하라! 우리는 이 땅에서 인생의 끝을 맞이하는 자가 아니다!(15-16).

8)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사셨다. 그래서 인간의 연약함을 아주 잘 아신다. 예수님은 내 사정을 모르신다고? 이런 착각하지 말자! 그 분은 날 지으신 창조자이시며, 또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사신 분이다. 

9)예수님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친히 당하셨다.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셨다(17). 이러한 십자가에 죽을 용기가 과연 나에게는 있는가!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으신데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시고 억울하게 못박히셨다. 이런 억울한 시험이 친히 당하셨다(17-18).

10)예수님은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18).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분이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다. 날 아주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능히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다(18). 

11)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형제들(3:1)은 주일 뿐만 아니라 평일인 오늘도 예수님을 생각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주일만 살아계신 분이 아니다. 항상 살아계시고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12)매일 매일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이다(3:1).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365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하시고 사셨다. 예수님께서 친히 사도로서 우리의 모범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친히 피를 흘리시는 대제사장 직을 감당하셨다(3:1). 그래서 오늘을 사는 나는 예수의 피 값으로 사는 자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나를 감히 과소평가하지 마라! 나는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 가치있는 자이다. 

13)예수님을 우리는 깊이 생각할 수 있다(3:1). 예수님은 생각하면 할수록 말할 수 없는 사랑이 그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14)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셨다(3:2). 정말 성실하게 사셨다. 죽기까지 부끄러움 없이 사셨다. 사람인 모세와는 비교와도 안되는 그러한 분이시다.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한가? 

15)만물을 지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3:4). 만물의 사용설명서는 하나님 안에 다 있다. 나를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우리는 살면서 갑작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에 “어? 내가 왜 이럴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갑작스럽게 몸이 아프다. 내 몸이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알 지를 못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지만, 예수님은 나를 잘 아신다. 내가 이상해지면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지말고,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먼저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16)예수님은 이 세상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하나님과 늘 함께 사셨다. 예수님의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능히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셨다(5).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을 짊어진 분으로서 우리가 가진 구원의 소망을 확증하도록 해 주신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의 미래를 위해 사시는 분이시다(5). 내 장래, 내 가족의 장래, 내 자녀들의 장래를 예수님께 감히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한다. 왜 내가 조정을 하려고 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신 분이시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나를 믿을 것인가?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우리 집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셔야만 우리 집의 장래가 밝다. 우리 집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이다. 

17)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은 확신에 차서 감히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3:6). 예수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 소망을 끝까지 잡으면 우리는 그 분의 집안에서 그와 같이 사는 것이다(3:6).

18)내가 감히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믿는 것이다(3:6). 자랑하라! 세상을 향해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19)우리 가정이 자랑해야 할 것은 공부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되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바로 믿는 거다(3:6). 내 자녀가 잘 해내어야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학교 사회 생활이 아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다. 내 힘으로 키우면, 혈과 육에 속한 자녀가 원하는 대로 키우면(14), 나중에 후회할 날이 나에게 꼭 찾아온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내 자녀에게 예수님 바로 믿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자녀에게 끌려가는 삶을 살지말라. 믿음의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 내 자녀의 밝은 미래는 나의 상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다. 

질문) 
1)나는 이 믿음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까? 나는 믿음의 형제 자매를 부끄러워 하지는 않습니까? 

2)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받은 고난을 생각하며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내 자녀를 살리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고난은 무엇입니까?

3)나는 어떤 시험과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소망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까?

4)나의 인생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부모로서 내 인생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따라서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까? 

5)예수님께서 온 하나님의 집을 맡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까? 

6)어떤 고난과 시험이든지 능히 도우실 수 있는 예수님께 간구할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7)만물을 지으신 분이고 피조물인 나를 신실하게 섬겨주신 예수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8)나는 무엇을 소망과 자랑으로 삼고 굳게 잡고 있습니까?

끝으로)
말씀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으세요! 내 이야기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믿고 그대로 적용하고 실행하세요. 말씀은 먹어야 살아요.